백제역사유적지구  사비시대(부여)  부여 왕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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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비쥬얼

금제관식 (무령왕릉 출토) 금제뒤꽃이(무령왕릉 출토) 허리띠장식(무령왕릉 출토) 금동제신발(무령왕릉 출토)

부여 왕릉원

능산리 고분군

부여 왕릉원은 충남 부여군 능산리 부여나성 바로 밖에 인접하여 위치하고 있다.
백제 왕릉으로 전하는 이 고분군은 동서로 이어지는 해발 121m의 능산리산의 남사면 산록에 위치한다. 좌우로는 야트막한 구릉들이 감싸고 있으며, 고분군 앞으로는 왕포천이라는 개울이 흐르고 있다.

고분군은 3기씩 앞뒤 2열을 이루고, 여기서 북쪽 후방으로 50m의 거리를 두고 1기가 자리하고 있어 모두 7기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부여 시가지를 둘러싼 나성의 동쪽 부분 바로 밖에 위치한다.

능산리-여름-전경

부여 왕릉원에 대한 조사는 1915년과 1917년에 이루어졌으며, 조사결과 세 가지 형식의 횡혈식석실분이 존재하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즉 백제의 횡혈식석실분은 천장을 어떤 형태로 마무리했는지에 따라 볼트(Vault)형과 평천장 구조로 나뉘고, 평천장 구조는 다시 단면의 형태에 따라 육각형과 사각형 구조로 나뉘는데, 부여 왕릉원에는 세 가지 형식의 고분이 모두 존재하고 있다. 천정의 모습에 따라 <아치형 천장→단면 육각형(또는 사각형) 평천장>의 순으로 조성되었던 것으로 인정된다.
능산리의 주요 분 가운데 능산리 2호분은 볼트(Vault)형의 천장 구조를 가지고 있다. 널방은 직사각형의 평면으로 되어 있으며, 남벽 중앙에 널길이 부설된 횡혈식석실분이다. 널방의 규모는 남북 3.21m, 동서 1.98m이며, 높이는 2.15m이다. 벽면은 잘 다듬은 장대석을 사용하여 터널처럼 곡면이 이루어지도록 쌓아올려 송산리 6호분이나 무령왕릉의 경우와 흡사하다. 다만, 사다리꼴의 판석을 사용하지 않고 정상부에 편평한 판석을 사용한 점이 특징적이다.

능산리-봄-진입로

능산리 3호분과 5호분은 천장의 구조가 매우 이색적이다. 잘 다듬은 판석으로 벽면과 천장을 구축하였으며, 남벽 중앙에 널길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다른 분과 유사하지만, 벽면을 수직으로 올린 다음 일정 높이에서 판석을 45°각도로 얹어 각을 줄인 다음, 그 위에 판석으로 된 뚜껑돌을 올려놓아 단면이 육각형이 되게 마무리하였다.
능산리 1호분 지하에 땅을 파고 그 안에 잘 다듬은 거대한 판석 1매씩을 이용하여 동벽과 서벽, 그리고 북벽을 구축하여 만든 횡혈식석실분으로, 수직으로 세워진 벽석(壁石)들 위에 그대로 뚜껑돌을 올려 완성한 관계로 단면이 사각형 형태를 띠고 있다. 널방의 규모는 길이 3.27m, 너비 1.52m이며, 높이는 1.95m이다. 또한 1호분 널방의 네 벽에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고, 천장에는 연꽃무늬와 구름무늬를 그린 벽화가 발견되어 백제 회화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부여 왕릉원의 분들은 일찍이 도굴되어 두개골 금동제 장신구 및 허리띠 등 약간의 유물만 수습되었다. 최근 고분군 서쪽에서 절터가 발굴되어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와 567년 제작된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이 출토되었는데, 이로 인해 부여 왕릉원이 사비시대의 백제왕실 분이라는 것을 재확인시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