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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과 불국사

석굴암석굴
국      가
대한민국(Korea, Republic of)
위      치
경상북도(慶尙北道) 경주시(慶州市)
좌      표
N35 46 60, E129 20 60
등재연도
1995년
등재기준
(ⅰ), (ⅳ)

석굴암(石窟庵)과 불국사(佛國寺)는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고대 불교 유적이다. 석굴암은 불상을 모신 석굴이며, 불국사는 사찰 건축물이다. 두 유산은 모두 경주시 동남쪽의 토함산(吐含山)에 있으며,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다. 두 유산은 8세기 후반에 같은 인물이 계획해 조영하였으며 비슷한 시기에 완공되었다. 석굴암은 화강암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쌓아 만든 석굴로 원형의 주실 중앙에 본존불(本尊佛)을 안치하고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나한상, 신장상 등을 조화롭게 배치하였다. 불국사는 인공적으로 쌓은 석조 기단 위에 지은 목조건축물로 고대 불교 건축의 정수를 보여 준다. 특히 석굴암 조각과 불국사의 석조 기단 및 두 개의 석탑은 동북아시아 고대 불교예술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진정성

석굴암 본존불과 그 주위 대부분의 석조 조각과 건축의 형태는 8세기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진정성이 높다. 불국사 경내의 석조 유산은 부분적 보수 과정을 거쳤을 뿐 신라 시대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목조 건축물들은 16세기부터 보수와 복원의 과정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모든 복원 사업은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고 전통 재료와 기술이 사용되었다.

완전성

석굴암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불국사는 불법의 세계를 현실 세계에 구현한 걸작으로, 이들 두 유산은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불국사와 석굴암 전 영역과 두 유산이 위치한 토함산이 유산 구역에 포함되어 있다.

본문

토함산 남동쪽 비탈에 있는 석굴암은 동해를 바라보며 자리 잡고 있다.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인 751년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짓기 시작해 혜공왕 10년인 774년에 완공됐다. 기록에 따르면 석굴암의 원래 이름은 석불사였다고 한다. 석굴암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고, 벽에는 39개의 불상들이 조각되어 있으며 한가운데에 본존불상이 놓여 있다.석굴암은 전실(前室), 비도(扉道), 돔형 주실(主室)로 구성된다. 전실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양쪽 벽에는 팔부신장(八部神將)이 각각 네 사람씩 새겨져 있다. 비도는 전실에서 주실로 들어가는 부분인데, 비도의 입구 옆에는 두 사람의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이 서 있다. 비도의 좁아지는 부분 양쪽으로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각각 한 쌍씩 조각되어 있다. 주실의 입구 양쪽에 팔각형 돌기둥 두 개가 각각 세워져 있고, 본존불상은 주실의 중앙에서 조금 벗어난 지점에 놓여 있다. 주실의 입구 양쪽 벽에는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 두 보살, 십나한이 새겨져 있다. 본존불상 뒤의 벽 한가운데에는 자비의 보살로 알려진 십일면관음보살상(十一面觀音菩薩像)이 새겨져 있다.전실과 주실의 벽에 새겨진 불상들 아래 놓여 있는 돌에도 마찬가지로 부조가 새겨져 있다. 석굴암이 만들어진 당시에 십일면관음보살상 앞에 있었던 대리석 사리탑은 일제강점기 때 제거됐다. 본존불상 뒤의 벽에 새겨진 십일면관음보살상 위에는 거대한 원형 연판(蓮瓣)이 조각되어 있다. 이 원형 연판은 정면에서 보면 마치 본존불상의 후광인 듯한 인상을 준다. 이 연판 위쪽 벽에는 열 개의 감실들이 가로로 늘어서 있다. 감실 각각에는 보살이나 불자의 조각상이 놓여 있었으나, 현재 그 중 두 개가 없어진 상태다. 돔형 천장을 구성하는 돌들은 주실 천장의 또 다른 연판을 향해 모아지는 모습을 하고 있다.본존불상인 석가여래좌상은 3.45m 높이로 연화좌(蓮花座) 위에 앉아 있다. 불상의 머리카락은 달라붙은 곱슬머리이며, 정수리에는 궁극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肉髻)가 돌기처럼 튀어나와 있다. 이마는 넓고, 초승달 같은 눈썹 아래로 반쯤 감은 눈은 동해를 응시하고 있다. 오른쪽 어깨에 걸쳐져 왼팔과 가슴을 덮은 모양의 법복은 섬세하고도 현실적이다. 불상은 부좌 상태에서 항마촉지인이라는 손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는 깨달음을 얻은 부처가 지신(地神)을 소환해 자신의 깨달음을 증명할 때 취했던 동작이다. 금강역사상, 팔부신장상, 천부상, 보살상, 십나한상, 사천왕상 등의 다른 조각들도 모두 세부적인 자연스러움에 주의를 기울여 정교하게 조각되었다.석굴암의 본존불상이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는 걸작이라면, 불국사는 신라의 이상향인 불국토를 현세에 드러내고자 의욕적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불국사는 석굴암과 동시에 만들어졌는데, 불국사의 축조를 시작하고 지휘한 사람 역시 석굴암을 만든 재상 김대성이었다. 효심이 깊었던 김대성은 현생의 부모를 기리며 불국사를 세웠고, 전생의 부모들을 기리며 석굴암을 지었다.이승에 부처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은 신라의 오랜 꿈이었고, 신라인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바로 부처의 나라라고 믿었다. 때문에 불국사라는 이름 자체도 신라인들에게는 큰 의미를 지닌다. 불국사는 말 그대로 부처님 나라의 사찰을 뜻한다. 이것은 곧 불국사가 부처님의 나라가 현세에 실현된 낙원이라는 의미다.불국사 경내는 이승에 실현된 불교적 이상향이라 여겨졌다. 석단(石壇) 위에 지어진 목조 건축물들은 세 구역으로 구분된다. 비로자나불의 전당인 비로전, 득도의 전당인 대웅전, 지복의 전당인 극락전이 그것이다. 세 구역은 하나의 현세 공간과 두 개의 천상 공간을 상징하고 있다. 순수한 부처의 나라로, 비로자나불이 존재하는 현세, 아미타불의 낙원,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가 바로 그것이다.비로전, 극락전, 대웅전을 포함해 석단 위의 공간은 곧 부처의 나라이며, 석단 아래의 공간은 이승이다. 이 두 세계는 청운교, 백운교, 연화교, 칠보교 두 쌍의 다리로 연결된다. 석단, 석교(石橋), 그리고 대웅전 앞에 세워진 석가탑과 다보탑은 신라 시대의 우수한 석공 기술을 보여 준다. 석굴암과 마찬가지로 불국사는 손으로 다루기 힘든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옛날에 불국사에는 토함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로 만들어진 구품연지라는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구품연지는 존재하지 않지만, 토함산의 물이 흘렀던 수구의 흔적이 아직까지 석단에 남아 있다.1592년 임진왜란 당시 불국사는 막대한 피해를 입어 목조건물이 모두 불에 타버렸지만, 다행히 석단, 석교, 석탑, 등(燈), 금으로 도금된 청동 불상들은 무사히 남았다. 오늘날 볼 수 있는 불국사의 건축물은 1969년부터 1973년 사이에 시행된 복구 작업을 통해 부분적으로 재건된 것이다. 복구는 불국사 유적의 발굴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으나, 신라 시대 당시의 대규모 복합 건축물을 재현해 내지는 못했다. 불국사의 중심에 위치한 대웅전 앞뜰에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동서로 놓여 있다. 통일신라 시대 이래 사찰의 주 건물 앞에는 동일한 외관을 가진 한 쌍의 탑을 세우는 것이 관례였으나, 다보탑과 석가탑은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석가탑과 다보탑에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내용이 반영되어 있다. 석가모니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설파할 때 보배로운 탑이 땅에서 솟아났고, 이미 깨달음을 얻은 다보여래가 그 탑 위에 나타나 석가모니의 설법을 증명했다. 그리고 다보여래와 석가모니는 탑 안에 나란히 앉았다는 것이다. 다보탑은 이 이야기에 나오는 다보여래를, 석가탑은 석가모니를 상징하고 있다.폭 6.7㎝, 길이 6.2m의 두루마리에 적힌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또한 주목할 만하다. ‘흠 없이 순수한 빛의 위대한 다라니경’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 유물은 1966년에 석가탑의 2층에서 발견됐다. 8세기경에 만들어진 이 경전은 목판으로 인쇄된 경전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등재기준

  • 기준 (ⅰ) : 석굴암과 불국사는 신라인들의 창조적 예술 감각과 뛰어난 기술로 조영한 불교 건축과 조각으로 경주 토함산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한국 고대 불교예술의 정수를 보여 주는 걸작이다.
  • 기준 (ⅳ) : 석굴암과 불국사는 8세기 전후의 통일신라 시대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건축과 조각으로, 석굴암은 인공적으로 축조된 석굴과 불상 조각에 나타난 뛰어난 기술과 예술성, 불국사는 석조 기단과 목조건축이 잘 조화된 고대 한국 사찰 건축의 특출한 예로서 그 가치가 두드러진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