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백제 문화 투어
- 작성자이명의
- 작성일2024-06-01 00:36:22
- 조회수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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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산 미륵사지
미륵사(彌勒寺)는 백제 무왕 때 왕비인 사택왕후의 발원으로 지어진 호국 사찰[1]이다. 2009년 전라북도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해체 중 내부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에 따르면 639년에 미륵사를 창건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미륵사는 익산 용화산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좌우 능선 사이에 평지에 남향을 향하여 건립되었다.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는 현재 절터만 남아 있으며, 사적 제150호 익산미륵사지로 지정되어 있다. 그곳에는 현재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석탑(서탑)과 복원된 동탑이 있고, 목탑이 있었던 터가 있으며, 미륵사지 당간지주(보물 236호) 외에 무왕과 왕비의 설화가 깃든 유물과 유적 등이 1966년에 발굴되었다.
- 공산성
공산성은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성곽으로 백제의 수도가 공주였을 때 공주를 지키던 백제의 산성이다. 백제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의 백제 도성이었으며, 이후 조선시대까지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큰 중요한 유적이다.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포곡형(包谷形) 산성으로,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石城)으로 고쳤다. 쌓은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며,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또는 공산성으로, 조선시대 이괄의 난(1623)으로 인조가 피난한 이후 쌍수산성으로 불렀다. 백제 멸망 직후에 의자왕이 잠시 머물기도 하였으며,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이기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김헌창의 난(822)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충청남도 공주시 송산리(현재 행정구역명은 웅진동)에 위치한 백제의 왕릉들로 추정되는 고분들로 현재 1, 2, 3, 4, 5, 6, 7호 분이 복원이 되어 있다. 이중 7호분은 무령왕릉으로 더 널리 알려져있다. 사적 13호로 지정되어 있다.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총 8개의 유적지들 중 공주지역에 2곳(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 4곳(관북리 유적 및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부여 나성))가 세계 유산 등재 심사를 최종 통과했다. 이번 세계 유산 등재는 충청권에서는 최초로 선정되었다. 2021년 9월 17일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미륵사(彌勒寺)는 백제 무왕 때 왕비인 사택왕후의 발원으로 지어진 호국 사찰[1]이다. 2009년 전라북도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해체 중 내부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에 따르면 639년에 미륵사를 창건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미륵사는 익산 용화산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좌우 능선 사이에 평지에 남향을 향하여 건립되었다.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는 현재 절터만 남아 있으며, 사적 제150호 익산미륵사지로 지정되어 있다. 그곳에는 현재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석탑(서탑)과 복원된 동탑이 있고, 목탑이 있었던 터가 있으며, 미륵사지 당간지주(보물 236호) 외에 무왕과 왕비의 설화가 깃든 유물과 유적 등이 1966년에 발굴되었다.
- 공산성
공산성은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성곽으로 백제의 수도가 공주였을 때 공주를 지키던 백제의 산성이다. 백제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의 백제 도성이었으며, 이후 조선시대까지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큰 중요한 유적이다.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포곡형(包谷形) 산성으로,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石城)으로 고쳤다. 쌓은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며,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또는 공산성으로, 조선시대 이괄의 난(1623)으로 인조가 피난한 이후 쌍수산성으로 불렀다. 백제 멸망 직후에 의자왕이 잠시 머물기도 하였으며,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이기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김헌창의 난(822)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충청남도 공주시 송산리(현재 행정구역명은 웅진동)에 위치한 백제의 왕릉들로 추정되는 고분들로 현재 1, 2, 3, 4, 5, 6, 7호 분이 복원이 되어 있다. 이중 7호분은 무령왕릉으로 더 널리 알려져있다. 사적 13호로 지정되어 있다.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총 8개의 유적지들 중 공주지역에 2곳(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 4곳(관북리 유적 및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부여 나성))가 세계 유산 등재 심사를 최종 통과했다. 이번 세계 유산 등재는 충청권에서는 최초로 선정되었다. 2021년 9월 17일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